지난 14일 필자는 전남 순천을 거쳐 고흥 여행길에 금산면(거금도)에 위치한 세계적인 프로레슬러 故김일 선수의 기념체육관을 찾았다. 사실 여러번 거금도를 방문하였지만 ‘김일기념체육관’을 방문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김일기념체육관 전경.

 

김일기념체육관 광장에 세워진 김일 선수 동상.

 고흥 거금대교를 지나 오천항 방향으로 가는 길에 좌측에 있는 김일기념체육관은 1960~70년대 국내외 프로 레슬링계를 주루잡았던 ‘박치기 왕’ 故김일(1929~2006) 선수를 추모하기 위해 지난 2011년 12월17일 개관했다.

 1929년 2월24일 전남 고흥군 금산면 어전리 평지 마을에서 출생한 김일(金一)은 어려서부터 남달리 두뇌가 명석하고 힘이 뛰어났다. 어린 나이인 16세에 이미 6척 장신으로 성인들을 제치고 황소를 타는 등 호남의 씨름판을 휘어잡았다.

 그러나 이에 만족하지 않은 김일은 더 큰 세상을 향한 꿈으로 프로레슬링의 세계적인 선수가 되고자 결심하고 28세되던 1956년 일본 레슬링계에서 큰 이름을 떨치고 있던 역도산(力道山 1924~1963)을 찾아 일본으로 밀항한다.

 하지만 그는 역도산을 만나기도 전에 불법체류자로 1년 가까이 수감생활을 하게된다. 그러나 김일은 수감생활을 하면서도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역도산에게 편지를 보냈다. 이에 감응한 역도산의 보증으로 김일은 교도소에서 벗어나 1957년 드디어 도교에 있는 역도산체육관 문하생으로 갈망하던 레슬링계에 입문하였다. 그러나 조선인이라는 이유만으로 그가 받은 모진 모욕과 멸시는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는 굴하지 않고 오히려 더욱 각오를 다지며 체력단련과 기술 연마에 담금질을 하였다.

선수 시절의 김일.

가운을 입은 김일 선수.

 김일 선수는 피니쉬 무브로 특유의 헤드벗인 외다리 원폭 박치기가 유명하며, 이 때문에 ‘박치기왕’이라는 애칭이 있었다.
 김일 선수의 박치기는 상대 머리를 붙잡아 고정시킨 뒤 한발을 들고, 몸을 뒤로 젖혔다가 들이받기 때문에 당시 일본에서는 외다리 박치기라 부르기도 했다. 체중이 잔뜩 실린 박치기의 파괴력 덕에 원폭박치기란 별칭도 붙었다.

 김일 선수의 경기 중 들어가는 원폭 박치기의 위상은 그야말로 무시무시할 정도였다. 그는 세계 챔피언인 헝가리계 미국인 루 테즈를 실신시킬 뻔 했으며, 일본이 자랑하는 자이언트 바바와 안토니오 같은 수많은 레슬링계의 강자들을 박치기로 쓰러뜨렸다.

 당시만 해도 대한민국은 개발도상국이라 여러모로 어려웠던 시절, 국민들에게 카타르시스를 안겨주던 김일 선수의 백인과 일본인들을 향한 통쾌한 박치기 한방은 말 그대로 꿈이자 희망이었으며, 국민들에게 ‘우리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주었다.

 김일 선수는 세계 프로레슬링 역사에서도 자신의 족적을 남긴 거물급 프로레슬러다.
 1960년대와 1970년대 중반까지 ‘박치기 왕’으로 최고의 인기를 누렸던 김일 선수는 ▲1963년 미국 원정 세계레슬링협회 세계태그챔피언, ▲1964년 북아메리카 태그챔피언, ▲1965년 극동 헤비급 챔피언, ▲1966년 도쿄 올아시아 태그챔피언, ▲1967년 제23대 세계레슬링협회 세계헤비급 챔피언, ▲1972년 도쿄 인터내셔널 세계 헤비급 태그챔피언 등 세계 챔피언 타이틀을 획득했고 30여 년간 삼천여 차례의 경기를 치렀다고 한다.

체육인 최고의 영예!~1994년 국민훈장 석류장, 2000년 체육훈장 맹호장을 받았으며 사후인 2006년 체육훈장 청룡장이 추서 되었다.

 이처럼 김일 선수는 프로레슬링을 통해 국민의 심금을 울려 국민적 영웅으로 떠오르면서 ▲1966년 고흥군 군민의 상을 수상하였으며, ▲1994년 국민훈장 석류장 수상, ▲1999년 고흥군 금산면 면민의 상 수상에 이어 전라남도 도민의 상을 수상하였고 ▲2000년 대한민국 체육훈장 맹호장 수상, ▲2006년 대한민국 체육훈장 청룡상을 수상하였으며, 2018년에는 대한민국 스포츠영웅에 헌액되었다.

 또 1975년 도쿄 스포츠 프로레슬링 대상 감투상, 2006년 도쿄 스포츠 프로레슬링 대상 공로상 등을 수상하기도 했다.
 전설적인 프로레슬러 ‘박치기왕’ 김일 선수의 감동적인 일화도 전해지고 있다. 1960년대 말경 국민 영웅으로 떠오르고 있던 그는 청와대로 초청받았는데, 그 자리에서 박정희 대통령이 그에게 소원을 묻자 그는 “제 고향 금산에 전기를 가설하여 주십시오.”라고 소원을 청원했다고 한다. 덕분에 전라남도 고흥군 금산면(거금도)은 1968년 제주도를 제외한 전국의 어느 섬보다 먼저 전기가 들어왔다고 한다. 이에 대해 금산면 사람들은 두고두고 가슴 뿌듯한 일로 김일 선수를 회고하고 있다. 故김일 선수의 자기 사욕보다 고향과 면민을 먼저 생각하고 사랑하는 고상한 인격과 품위가 돋보이는 부분이다. 그래서 국민들은 그를 더욱 그리워하고 존경하는 것 같다.

기념관 내에 성치된 김일 선수가 시합하기 전 입었던 가운과 기념 가운.

김일 기념체육관 유품전시실 입구에 설치된 사진. 현역시절 박치기로 상대선수를 날려 보내는 모습..

김일기념체육관 내에 김일 선수의 일대기와 업적, 챔피언 벨트, 유품이 전시돼 있어 생생하게 만나볼 수 있다.

 
 김일 선수는 2006년 10월26일에 만성신부전증 및 심장혈관 이상으로 인한 심장마비로 인해 78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유해는 고향인 전남 고흥군 금산면 생가 옆에 안장됐으나, 그의 생전 업적과 공을 크게 인정받아 2020년 5월 국립대전현충원 국가사회유공자 묘역에 이장됐다.

<문현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