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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2021/12/09  한중포커스
‘관용’과 ‘포용’이 사라진 한국정치

김정룡 '다(多)가치 포럼' 대표
군부 정권 수장이었던 박정희는 총격에 의해 사망했고, 전두환과 노태우는 감옥 갔었다. 1987년 직선제 이후 민주정부 이명박과 박근혜가 감옥에 있다. 노무현은 감옥에 가지는 않았지만 검찰의 칼날이 압박해오자 스스로 황천길을 택했다. 한국 대통령의 자리는 감옥 가지 않으면 자살하는 자리처럼 비춰지고 있어 국제 망신을 사고 있다. 한편 한국정치는 대통령이 퇴임하면 감옥 가는 것이 마치 관례처럼 인식되어 있어 어느 보수인사는 문재인 대통령도 감옥 가는 아름다운 전통을 따르게 될 것이라고 말해 물의를 빚었다. 감옥에 가지 않고 천수를 누린 김대중과 김영삼은 생전에 후배 대통령 취임식임에서 만나면 서로 눈길도 마주치지 않았다고 한다. 대범하지 못하고 호한다운 면모가 없는 쪼잔한 사람들이다.

한국국민들 중 대통령을 끌어내리고 감옥에 보내는 것을 민주주의 발전이라고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이것이 민주주의 발전인지, 민주주의에 상처를 뿌리는 것인지는 잘 모르겠으나 아무튼 국제적인 망신인 것만은 사실이다.

각종 기행을 저지른 트럼프가 퇴임하면 감옥에 갈 것 같았으나 멀쩡하게 살아 있다. 지난여름까지 기소한다는 얘기는 무성했으나 지금까지 감옥에 갔다는 소식은 들리지 않고 있다. 미국은 퇴임한 대통령을 기소할 수 있다는 법은 있으나 웬만해서는 기소하지 않는 성향이 짙다. 미국에서 현직 대통령의 경우는 어떤가? 기소할 수 있을까? 답은 NO이다. 2000년 미국 법무부가 내린 결론이다. 주지방법원에서는 현직 대통령을 기소할 수 있으나 어차피 사건이 연방법원으로 송치되기에 기각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주지방법원도 기소하지 않는다. 미국에서 현직 대통령을 기소하지 않는다는 결론은 미국대법원이나 헌법재판소가 내린 것이 아니라 법무부의 자체 결론이다. 그러니까 현직 대통령은 법적으로 기소가 가능하나 아예 기소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반영한 결론이다.

현시대에 대통령이 감옥 가는 것, 그것도 줄줄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경쟁하듯 감옥 가는 사례는 아마 대한민국이 챔피언인 것 같다. 대한민국이 명실상부한 금메달감이다.

어떤 나라의 경우 전직 수상이 법 위반하면 가택에 머무는 수준으로 제한 할 뿐 감옥에 보내는 사례는 없다. 게다가 전임 수상들에 대해선 언론이 별로 보도하지도 않는다.

동네 망신이라는 말이 있다. 한국 전직 대통령이 줄줄이 감옥에 가는 것은 진짜 동네(지구촌) 망신이다. 이젠 이 ‘관례’를 고쳤으면 좋겠다.

요즘 홍준표 의원은 이번 대선을 비리 대선으로 규명하고 ‘이재명과 윤석열 중에 지는 쪽은 감옥에 갈 것’이라고 말했다. 홍준표 의원의 이 발언도 대통령들이 줄줄이 감옥 가는 ‘관례’의 맥락에서 나온 발언이 아닐까? 생각된다.
대통령이 되면 감옥 가는 것이 기정사실처럼 비춰지는 발언이 있다. 지난 11월 5일 보수당 대통령후보가 발표되었다. 아쉽게 낙선된 홍준표 의원의 말에 의하면 그날 그의 아내 왈, “당신 감옥 갈 일은 없네요.”

대통령이 감옥 가는 것도 심각한 문제이지만 국회의원들도 서로 상대 당 의원들에게 혹은 국정감사에 출석한 기관장들에게 죄를 만들어 씌우지 못해 안달을 떨고 있다. 없는 증거도 만들고 지나간 사진도 지금 것으로 둔갑시켜 증거랍시고 죄로 몰고 가는 행태가 만연하는 정치는 정말 치사하고 혐오스럽고 심지어 저질스럽기까지 하다.

‘아니면 말고’식 정치는 의리도 믿음도 없는 비루한 정치이다.
한국에 처음 왔을 때 1·2년 동안에는 언론이 대통령을 비판하고 정치인을 비판하고 국회에서 서로 논쟁을 벌이는 정치가 신선하게 보였는데 세월이 흐름에 따라 신물이 날 정도로 한국정치가 후퇴하고 타락하고 있어 혐오감마저 든다. 혹자는 복잡하고 시끄럽고 혼란스러워 보이는 것이 1인1표선거민주주의 본질이라고 말하지만 나는 이런 격이 없는 민주주의는 반감이 든다.

왜 이렇듯 심각한 문제들이 발생하고 있는 걸까? 한국정치는 이미 관용과 포용의 정치에서 벗어나 서로 죽고 죽이지 못해 안달이 나는 아주 저급적인 정치형태가 살판치고 있기 때문이다. 심영복 교수는 한국정치가 그 격이 바닥에 떨어진 상황에 대해 다음과 같이 지적했다.

“우리 사회에서는 적일지라도 감동하며 수용할 정도로 멋있는 정치 행위를 찾아볼 수 없다. 멋있는 정치적 술수, 깍듯한 예의를 갖추면서도 엄격한 비판을 갖춘 언어, 우회적이고 암시적이면서도 가슴을 서늘하게 하는 촌철살인의 감각, 상대를 불쾌하지 않게 하면서도 유머가 넘치는 비판적 언어는 도대체 어디에서 볼 수 있을까? 냉소와 조소, 원한과 증오가 섞인 말만 넘칠 뿐이다.”

<삼국연의>가 역대 소설 가운데서 아직도 가장 인기 있는 이유가 무엇일까? 가장 역동적인 시대에 가장 역동적인 정치가 펼쳐졌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된다.
적벽대전 이전의 유비의 형상은 그야말로 보잘 것 없는 떠돌이 나그네였다. 가진 재산이라곤 관우와 장비를 부하로 둔 것뿐이었다. 자기 힘으로 전쟁에 이겨 한 푼의 땅이라도 얻은 적 없어 만날 남한테 얹혀사는 더불어 살림 살이었다. 게다가 가진 재간이라곤 도망가는 것과 우는 것뿐이었다. 얼마나 잘 울었으면 일각에서 ‘유비의 천하는 울음으로 얻어 낸 것’이라는 말까지 했을까! 유비가 얼마나 무능했으면 원술은 머리에 털이 나서 유비란 사람이 있다는 얘기 들어본 적이 없다고 했을까!

유비가 여포한테 깨지고 조조에게 귀의했다. 조조가 여포를 죽이고 유비를 곁에 두었을 때 항상 나갈 때는 같은 수레를 타고 식사 할 때면 동석으로 배려했다.
어느 하루 조조가 유비와 술 나누면서 넌지시 물었다.
“유공, 천하의 영웅은 누구라고 생각하시오?”
유비는 원소, 손책 등 조조를 당장 위협하고 있는 인물을 거론했다. 조조는
그들을 모두 가볍게 넘기더니 유비를 바라보며 폭탄선언을 한다.
​“천하에 영웅은 바로 그대와 나 둘뿐이오.”
이 말을 들은 유비는 깜짝 놀라 수저를 떨어뜨렸다고 한다.

조조가 여포를 죽이고 서주를 유비에게 맡긴 적이 있었다. 그때 별 다른 재능을 보여주지 못한 유비지만 민중의 인기가 매우 높았다. 조조의 눈에는 유비가 신비한 인물이었다. 아마 그래서 유비를 미래 영웅이라고 했을 것이다.
하지만 천하를 제패하려는 조조의 입장에서 그때까지 별로 존재감마저 없는 유비를 자신과 동격영웅으로 인정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더욱이 상대를 이렇듯 선뜻 천하의 영웅으로 인정한다는 것은 조조의 정치배포가 얼마나 컸던가는 것을 알 수 있다.
얼마 전에 끝난 두 당의 당내 경선에서 서로 라이벌인 이재명과 이낙연, 윤석열과 홍준표는 상대를 인정하는 태도는 전혀 없이 ‘험담’으로 긁어내리려는 노력에 치중하였다. 두 당의 최종후보로 화정된 이재명과 윤석열, 이 두 사람에게 조조처럼 싸울 때는 싸우더라도 쿨하게 상대를 영웅 대접하는 멋진 정치를 기대하는 것은 차라리 산에 가서 생선을 구하려는 것과 같이 있을 수 없는 일이 분명하다.

중국에서는 예로부터 욕 중에 가장 수치스런 욕이 바로 조상을 욕하는 것이다. 원수 아니면 웬만해서는 서로 조상을 욕하지 않는다. 삼국시대에 관도대전을 앞두고 원소를 돕고 있던 선비 진림(陳琳)이 조조를 공격하는 격문을 보냈는데 조조의 조상을 욕하는 대목이 있었다. 전쟁에서 이긴 조조는 진림을 만나 이렇게 말했다.
“나를 욕하는 것은 괜찮지만 어찌 나의 조상까지 욕보이게 했소?”
진림이 대답했다.
“시위에 화살을 얹으면 쏠 수밖에 없습니다.”
조조는 더 이상 문제 삼지 않고 진림을 사공군모좨주(司空軍謀祭酒)로 임명한다. 얼마나 멋진 용서인가?

자식을 죽인 원수라면 용서가 가능할까? 조조는 용서했다. 장수(張銹)가 조조에게 귀의했는데 조조가 장수의 숙모를 강제로 첩으로 삼아 장수에게 치욕을 안겼다. 화가 치민 장수는 쥐도 새도 모르게 반란을 일으켰는데 조조는 장남과 조카를 잃었다. 부모로서 가장 큰 상처를 입은 셈이었다. 그런데 도저히 용서가 안 될 것만 같던 장수가 투항해오자 조조는 열렬히 환영한다.
조조가 가장 얻고 싶었던 장수는 관우였다. 실제로 조조는 관우를 얻는 기회가 생겼다. 관우가 조조의 포로가 되었던 것이다. 문제는 관우의 태도였다. 조조는 그를 매우 후하게 예우하여 관우 스스로도 ‘조공이 나를 후하게 대접해주는 것을 알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유비를 배반하려고 하지 않았고 최후의 선택은 ‘공을 세워 조공에게 보답을 하고 떠나는 것’이었다. 결과적으로 조조는 그를 더욱 존경했고 끝내 그가 다시 적의 진영으로 돌아가게 놔둔다. 부하들이 관우를 추격하여 죽이려고 하자 조조는 이렇게 말했다.

“그만두시오. 사람마다 주인이 따로 있는 법이오.”
관우도 멋지지만 조조 또한 얼마나 멋진 사내인가? 떠나가되 비겁하게 슬그머니 도망치는 것이 아니라 나를 대한 만큼 보답하고 떠나는 관우, 비록 적진으로 가는 것을 알면서도 죽이지 않고 보내주는 조조의 마음 씀씀이도 진짜 대단했다. 왜 조조가 삼국시대 최고의 정치가인지? 이 사건 하나만으로도 충분한 설명이 될 것이다.

우리는 일상에서 상대를 모질게 굴면 이런 말을 흔히 한다.
“애비 죽인 원수가 있냐?”
원한 가운데 아버지를 죽인 원한이 가장 크다는 의미다. 그래서 다른 원한은 용서가 가능하지만 아버지 죽인 원한은 용서가 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버지를 죽인 원수를 용서한 사례가 있다.

월왕 구천이 오왕 합려를 전쟁터에서 죽였다. 부차가 왕위를 이어받아 오나라를 강국으로 만들었다. 이번에는 오나라가 월나라를 멸망시켰다. 그런데 부차는 아버지를 죽인 구천을 죽이지 않고 오나라로 끌고 간다. 비록 구천이 오나라에 끌려 가 노예가 되고 부차의 대변까지 맛보는 수모를 겪긴 했지만 결론적으로 살아남아 3년 만에 귀국한다.

20년 후 구천이 다시 오나라를 멸망시켰는데 이번에는 구천이 부차를 죽이지 않고 살려준다. 부차는 자기수모를 못 이겨 자결을 택한다. 부차의 죽음은 구천이 죽인 것이 아니라 스스로 택한 죽음이었다는 것은 구천이 20년 동안 품었던 원한을 용서했다는 의미이다.

부차도 남자 중의 멋진 남자였다. 적국(월나라) 여인 서시를 진심으로 사랑했다. 남자로서 해줄 수 있는 모든 것을 다해주었다. 그러다가 전쟁에 패해 서시를 더 이상 해줄 수 없는 처지에 처하자 서시를 첫사랑 남자인 범려에게 돌려준다. 얼마나 멋진 사내인가? 범부(凡夫)의 심리는 ‘내가 못 가질 바엔 너도 가지지 못하게 하는 것’이 상례이지만 부차는 사랑에 있어서 졸장부가 아닌 대장부였다.

우리는 스마트시대, AI시대에 살고 있는 현대인이지만 왜 고전에 열광하고 있는가? 고전에는 인간다운 인간모습들이 많이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자면 현시대는 사회 여러 면에서, 특히 정치면에서 인간다운 정치는 보기 드물어졌고 야비하고 저질스런 정치에 질려 고전을 통해 교훈으로 삼으려는 것도 있겠으나 인간다운 모습을 되찾고 싶은 맘이 간절하기 때문이다.  

 

■ 김정룡 프로필

 - 現)다가치 포럼 위원장/ 중국동포사회문제연구소장
 - 장춘대학교 일본어학부 전공
 - 연변제1교 일본어 교사 역임
 - 著書) 김정룡의 역사문화이야기 - <멋 맛 판> 2015년
 - 著書) 재한조선족문제연구집 - <천국의 그늘> 201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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