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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2020/08/04  한중포커스
김학철 선생 인상기
남룡해

남룡해 (촬영가/ 기업가)
얼마전 조글로에 전재한 길림신문 특집인터뷰
투혼의 작가 령혼의 메세지 를 읽고 김학철 선생님에 관하여 나도 한마디 하고저 한다.

저는 80년대 김학철 선생님과 한건물에서 함께 근무한적 있었다. 그때 작가협회는 우리가 근무하고 있는 연변조섲족자치주 문학예술계연합회(州文聯)건물 3층에 있었고 저희들은 4층이고 천지잡지사는 5층에 있었다.

 

그 당시 김학철 선생님에 관한 정책회복 후반기부터 시작하여 전부를 목격하였었는데 그때는 쌍지팡이 작가님이 어느 정도 인상은 있었으나 그저 그런가 하면서 지내 왔었다. 그러던 어느날 김학철 작가님이 황포군관학교 출신이라는 것을 알았을 땐 큰 호감이 생겼고 좋은 이야기 듣고 싶은 욕심이 생겼었다. 하지만 기회는 이루어지지 않았었다.

김학철 선생과 부인 기념사진
  

왜냐하면 전직 작가는 매주 월요일 오전에만 사무실에 나와서 회의하고 소통하고 나머지 시간은 전부 자택에서 창작하기 때문에 그냥 건물계단에서나 만나면 인사하고 스쳐지나 갈 뿐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던 19899월 나는 서울 종로구 관철동 파인힐에서 개인 사진전을 개최하였는데 어느날인가 전시회를 주최하여 주신 지인 류재정 선생이 갑자기 나를 찾는 것이었다.

 

그는 KBS방송국 원사장님이 전화 왔는데 오후 시간에 중요한 손님이 전시장으로 찾아가기에 잘 모시라고 하는 것이었다.

 

부랴부랴 정장을 하고 전시장에 나갔는데 오후 3시경에 풍채가 아주 늠름한 분이 수행 인원들과 함께 들어오고 있었는데 그 가운데 함께 들어오는 주인공은 쌍지팡이를 짚으신 김학철 선생님 부부였다. 너무나 놀라웠고 뜻밖의 일이였다 .

 

아니 어쩌면 서울에서 저의 개인사진전시회에서 이렇게 만날 수 있는가 꿈과 같았다.

 

너무나 갑작스러웠으나 얼결에 인사하고 함께 전시회를 관람하였다.

 

이때 주최측 지인 류재정 선생이 김학철 선생님을 알아보고 이 기회에 김학철 선생님께 식사대접을 한다고 난리 하였으나 같이 동행해 오신 분이 저녁 스케줄이 이미 다 되어 있기에 안 된다고 다음날로 약속 하라고 하고는 그냥 돌아가시었다.

매우 아쉬웠다.

저의 기억에 그때 당시 김학철 작가님은 중국에서는 그렇게 많이 알려지지 않았지만 한국에서 KBS 해외동포문학상 금방을 수상했고 한국대학교 교재에 까지 거재된 항일투사이고 문화거장으로서 산 인물, 산 영웅으로 한국에서 이미 많이 알려져 있었다.

 

몇일 후 류재정 선생이 김학철선생님을 모시는 기회가 만들어졌으니 나하고 준비 하라고 하시었다.

  

19899월 어느날 저녁식사 시간에 종로 모 뷔페식당에서 김학철 선생님과 부인 그리고 저와 류재정 선생 넷이서 자리를 함께 하였다.

 

기억에 식사장소는 눈부시는 불빛으로 휘황찬란했었고 매우 고급스러운 분위기였다.

 

김학철 선생님은 그냥 그 복장, 그 자태 그대로 쌍지팡이를 짚으시고 부인과 함께 오셨다.

 

우린 인사를 나누고 자리를 하고 뷔페식당을 한바퀴 둘러보았다. 그때로선 뷔페식당을 처음 목격하였기에 아주 놀라운 표정을 하였고 자리에 앉으시면서 저하고 중국에서 이런 음식을 이렇게 마음대로 먹게 한다면 금방 꽝이 날 것 같다며 환히 웃으시면서 이야기 하셨다. 지금도 그 기억이 어제 일 같이 너무 생생하다.

 

이렇게 우린 같은 연변에서 왔기에 여러 가지 이야기를 나누며 즐거운 식사시간을 가졌다. 저는 선생님께 어떻게 되어 전시장에 오시게 되었는가를 물었더니 하시는 말씀이 “KBS방송국에서 생방송 인터뷰를 듣고 연변 조선족동포 사진작가가 전시회를 개최하였다기에 근처호텔에 투숙하고 시간도 좀 있고 해서 호기심으로 찾아왔는데 와 보니 그냥 풋면목 있는 당신이였다고 말씀하였다.

 

드디어 화제는 한국 서울에 대한 인상을 서로 이야기 했고 많이는 김학철 선생님과 류재정 선생이 교류를 한 것으로 기억된다. 나는 촌놈이라 그냥 얻어듣기만 하는 처지였다.

 

두시간 푼이 되는 식사시간에 많은 이야기가 오갔다.

 

식사를 마치고 종로 어느 호텔까지 모시고 갔고 다음날에 또 만나자고 약속하고 작별인사 나누고 헤어졌다 .

 

그 이듬해인 1990년 류재정 선생이 연변을 방문하셨다. 그때 류재성 선생님을 모시고 김학철 선생님 댁으로 찾아 갔었다. 자택 자리는 지금 세기호텔 자리였는데 약 60~70쯤 되어보였고 정부에서 문화예술분야의 거목되는 분들을 위하여 지어준 문화저택 아파트라고 했다.

 

다리가 불편하셔서 일층으로 특별하게 분양받았다고 자랑하셨다. 나름 서재로 생각되었는데 암튼 책자가 꽉 차있었다. 책 외에는 아무것도 찾아볼 수 없어서 속세에서 말한 대로 책 외에는 석발 막대 휘둘러도 걸리적거릴 게 없었다.

 

이것이 바로 그때 당시 항일투사 문화거장의 현주소였다.

 

반겨 맞는 그이는 역시 그 모습 그대로 조용한 분이셨다. 억양이 매우 부드러웠고 목소리도 높지 않았으며 경상도말이 섞인 어조였는데 말하는 톤이 낮고 천천히 알아듣기 좋은 편이었다. 인상속에 그냥 우리 생활속에서 흔히 만날 수 있는 보통서민과 똑 같은 자애로운 분이셨다.

 

그의 필치가 아주 예리하고 불타오르고 격정이 분발되어 있은 것에 비해 보여지는 모습과 일상은 너무나도 평범하고 소박하였다.

 

김학철 선생님의 그때 모습을 상기하려니 만감이 교차된다.

많은 이들이, 그리고 각계 문단에서도 그를 당대중국문화거장 로신 선생과 비하고 있다. 참으로 우리 문단의 거장이 되시기에 손색없는 분인 것만은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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