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의 어려움 넘어 사회적 안전망 구축 서둘러야”
고령화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는 귀환동포사회에서 경제적 어려움과 가족관계 단절, 복지제도의 사각지대 등으로 위기에 놓이는 동포들이 늘어나면서 이들을 위한 실질적인 사회안전망 구축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최근에는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난 한 중국동포가 장례비와 화장비조차 마련하지 못해 장례 절차를 진행하기 어려운 안타까운 일이 발생했다.
지난 10월 12일 오후 9시경 중국동포단체협의회(의장: 김세광)에 긴급한 연락이 들어왔다. 중국동포 고(故) 김○○ 씨가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났지만 다음 날인 13일 발인을 앞두고 유가족이 장례비는 물론 화장비용조차 마련하기 어려운 상황이라는 내용이었다.
사정을 접한 중국동포단체협의회는 늦은 밤 긴급하게 참여단체들과 상황을 공유하고 지원방안을 논의했다. 시간이 촉박했지만 “고인의 마지막 길만큼은 외롭게 보내드려서는 안 된다”는 데 뜻을 모았고, 각 단체와 동포들이 자발적인 모금에 나섰다.
이번 긴급모금에는 중국동포연합중앙회, 한민족사랑지원봉사회, 전국동포총연합회 수원지회, 허련옥 씨, 중국동포한마음연합총회, 재한동포총연합회, 전국동포총연합회, 온정나눔협회 등이 함께 힘을 보탰다.
그 결과 짧은 시간 안에 약 200만원의 성금이 마련됐으며, 13일 오전 중국동포단체협의회 김세광 의장과 전국동포총연합회 김호림 총회장이 직접 유가족을 찾아 성금을 전달했다. 동포사회의 작은 정성이 모여 고인의 마지막 길을 지킬 수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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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동포단체협의회 김세광(왼쪽 첫번째) 의장과 전국동포총연합회 김호림(오른쪽 첫번째) 총회장이 직접 유가족을 찾아 성금을 전달하고 있다. |
그러나 이번 사례를 단순한 미담으로만 바라봐서는 안 된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국에 장기간 거주해 온 중국동포사회 역시 빠르게 고령화되고 있다. 특히 중국에서 태어나 생활하다 고국을 찾아 한국으로 돌아온 귀환동포 가운데는 고령이 된 뒤 경제활동 능력이 떨어지고, 가족이나 자녀와 떨어져 생활하거나 안정적인 소득과 주거기반을 갖추지 못한 경우도 있다.
문제는 이들이 질병이나 사고, 사망과 같은 갑작스러운 위기상황에 놓였을 때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통합적인 지원창구가 충분하지 않다는 점이다. 체류자격이나 국적, 건강보험과 복지제도 적용 여부, 가족관계 등에 따라 지원을 받는 데 어려움이 발생할 수 있고, 제도를 제대로 알지 못해 도움을 신청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특히 홀로 생활하는 고령 귀환동포의 경우 문제가 더욱 심각하다. 갑작스럽게 병원에 입원하거나 거동이 어려워졌을 때 보호자가 없고, 사망한 경우에는 장례를 책임질 가족이나 비용이 없어 동포단체와 주변 지인들이 급하게 도움을 모아야 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
이제는 이러한 문제를 개인의 어려움이나 동포단체의 자발적인 모금에만 맡겨서는 안 된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 재외동포 관련 기관, 복지기관과 동포단체가 함께 참여하는 ‘고령 귀환동포 긴급지원 네트워크’ 구축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긴급의료·돌봄·주거·장례지원 등을 한곳에서 안내받을 수 있는 상담창구를 마련하고, 가족이나 보호자가 없는 고령동포를 사전에 파악해 위기 발생 시 신속하게 대응할 수 있는 시스템도 필요하다.
경제적으로 어려운 귀환동포가 사망했을 경우 최소한의 장례와 화장을 지원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와 긴급지원기금 마련도 검토해야 한다. 아울러 동포단체가 현장에서 위기가정을 발견하면 지방자치단체와 복지기관으로 즉시 연계할 수 있는 민관 협력체계를 구축하는 것도 중요하다.
김세광 중국동포단체협의회 의장은 “이번에는 여러 단체와 동포들이 급하게 힘을 모아 고인의 마지막 길을 지켜드릴 수 있었지만 앞으로 이런 일이 발생할 때마다 모금에만 의존해서는 안 된다”며 “귀환동포사회도 이미 고령화시대에 접어든 만큼 어려운 동포들이 의료와 돌봄, 복지, 장례 문제에서 소외되지 않도록 정부와 지자체, 동포사회가 함께 제도적인 안전망을 만들어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한때 더 나은 삶과 고국에서의 새로운 출발을 꿈꾸며 한국을 찾았던 귀환동포들이 이제 노년을 맞고 있다. 이들이 살아가는 동안 인간다운 삶을 보장받고, 생의 마지막 순간에도 최소한의 존엄을 지킬 수 있도록 하는 것은 더 이상 어느 한 개인이나 단체만의 문제가 아니다.
이번 장례비 긴급지원 사례는 우리 사회에 하나의 질문을 던지고 있다.
“고령화되는 귀환동포사회의 마지막 안전망을 누가, 어떻게 만들어 갈 것인가.”
이제 그 답을 정부와 지방자치단체, 동포사회가 함께 찾아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