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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2026/11/03  한중포커스
[수필] “흩어지는 연기, 남아있는 무게”
류송미 작가

류송미 작가
화장터의 공기는 차갑고 고요했다. 거대한 화로의 문이 열리고 닫힐 때마다 한 사람의 일생이 한 줌의 재와 한 줄기 연기로 스러져 갔다. 한 생애가 저토록 짧은 흔적으로 남는다는 사실 앞에서 나는 한동안 말을 잃었다.

삶은 허무한 것일까. 그러나 우리는 그 허무를 견디고 달래며 살아간다. 오래된 추억을 갈고 닦고 상처를 보듬으며 저마다의 하늘을 조금씩 열어 간다. 그렇게 삶은 소멸을 향해 가면서도 성숙의 빛을 품는다.

오늘 나는 지인의 어머니를 떠나보내기 위해 화장터에 서 있었다.
누구나 언젠가는 그 길을 가야 한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그런데도 죽음은 여전히 낯설고 두렵다. 머리로는 알고 있으면서도 가슴으로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 죽음은 그렇게 우리 곁에 서늘하게 다가오는 존재인 것이다.

나는 어머니를 잃은 지인에게 조심스레 말을 건넸다.
“많이 슬프시겠지만 마음을 굳게 먹어요. 어머님은 저 하늘의 별이 되어 언제까지나 그대를 지켜보고 계실 거예요. 그러니 힘을 내서 더욱 열심히 살아가셔요.”

떠나간 어머니가 별이 되어 곁에 머문다는 말이라도 그의 가슴에 작은 위로로 남기를 바라는 내 맘이었다.

그러나 정작 나를 아프게 한 것은 따로 있었다. 붉어진 눈시울로 조문객을 맞이하면서도 그는 남겨진 가족들을 챙기느라 쉴 틈이 없었다. 슬픔에 잠길 겨를조차 허락되지 않은 사람처럼 그의 어깨는 무거워 보였다.
“고마워. 그래야겠지.”
 짧은 대답 속에는 차마 다 꺼내 놓지 못한 슬픔이 묻어 있었다.

사랑하는 어머니를 영영 떠나보낸 것만으로도 감당하기 어려울 터였다. 그런데 그는 슬픔을 추스를 새도 없이 앞으로 살아갈 날들의 책임까지 짊어져야 했다. 한 사람의 부재가 남겨 놓은 빈자리에는 그리움만 들어서는 것이 아니었다. 돌보아야 할 사람들, 감당해야 할 생계, 어김없이 이어질 내일이 함께 들어서고 있었다.

떠나는 사람에게 죽음은 마지막 문턱이지만, 남겨진 사람에게는 그 문턱 너머의 삶이 시작되는 자리이기도 했다.
그 무게가 내 가슴으로도 묵직하게 밀려왔다.

문득 화장터 굴뚝에서 타래 지어 솟아오르는 연기가 눈에 들어왔다. 나는 그 연기를 바라보며 자신에게 물었다.
우리는 왜 영원히 살 것처럼 오늘을 헐떡이며 살아가는 걸까.
무엇을 그토록 움켜쥐려 하고, 무엇 때문에 그리 많은 마음을 소모하며 살아가는 걸까. 
언젠가 모두 놓고 떠나야 한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우리는 자주 그 사실을 잊는다. 내일이 당연히 주어질 것처럼 오늘을 다그치면서 곁에 있는 사람의 소중함을 뒤늦게 깨닫는다.

그러나 나는 끝내 답을 찾지 못했다. 
다만 굴뚝을 타고 하늘로 흩어지는 연기를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연기는 점점 옅어지다가 마침내는 사라지고 말았다.. 그 순간 뜨거운 것이 두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죽음은 떠나는 이에게 한 생애의 마침표일지 모른다. 그러나 남겨진 이들에게는 그 마침표가 또 다른 문장의 시작이 되는 것이다. 사라진 사람의 자리를 받아들이고, 그 부재와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워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결국 무엇을 남기고 떠나야 할까.
남겨진 사람들에게 슬픔만을 유산처럼 물려주지 않는 것. 우리가 떠난 뒤에도 그들이 감당해야 할 삶의 무게를 조금이라도 덜어 주는 것. 함께했던 따뜻한 온기와 아름다운 추억이 상실의 아픔을 조금씩 덮어 줄 수 있도록, 살아 있는 동안 사랑을 아끼지 않는 것.

어쩌면 그것이 죽음을 생각하며 삶을 살아가는 가장 다정한 방식일 것이다.
오늘도 결국 흘러가고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나는 그 사실을 마음에 새기며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한 점의 감탄부호로 남고 싶었다. 삶을 긍정하게 하는 작은 빛, 힘겨운 날에도 다시 일어서게 하는 따뜻한 흔적으로 남고 싶었다.

나는 말없이 고개를 숙였다. 가을 산자락에 저녁빛이 내려앉고 있었다.
흩어지는 연기는 사라져도 나는 마음속 깊은 곳에 내일의 태양을 기다리는 소망의 불씨 하나를 조심스레 심어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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